한국영화 100년과 '기생충'황금종려상 수상
한국영화 100년과 '기생충'황금종려상 수상
  • 도회 편집위원
  • 승인 2019.06.24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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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100년 포스터
한국영화100년 포스터
칸 국제영화제 '기생충' 팀
칸 국제영화제 '기생충' 팀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올해는 한국영화 100년을 맞는 해이다. 19191027, 한국 최초의 상설 영화관 단성사에서 우리 자본으로 제작된 최초의 연쇄극 의리적 구토가 처음 상영되었다. 연극공연 중에 일부 장면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로서는 불완전한 형식이지만 우리 손으로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한국영화의 기점으로 인정하고 있다.

 본격적인 한국영화는 1930년대에 극영화 나운규의 아리랑등이 제작되면서 첫 황금기를 맞다가 일제의 통제에 의해 군국주의 선전 영화가 판을 친다. 해방이 되고 전쟁을 겪은 후 6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한국영화의 성장기를 맞았지만 기본적으로 검열과 통제의 역사 속에서 지난한 길을 걸어와야 했다.

그러다가 영화계에 한 줄기 빛 같은 일이 생긴다. 1984년 영화아카데미가 발족하고 다음 해 110명의 감독을 배출한다. 1990년 문화부가 생기고 초대장관에 이어령 교수가 임명된다. 그해 한국종합예술학교 설치령이 제정되고 2년 후 개교한다1995년 영화진흥법이 제정되고 1996년 부산영화제가 시작된다1998년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등장한다. 지금도 영화 진흥을 위한 촘촘한 제도들이 한국 영화를 진흥하고 있는 것을 지금 상영하는 어느 우리나라의 자막을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는 이 모든 요소들이 녹아 있다. 먼저 봉준호 감독는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아카데미 11기이다. ‘기생충의 이선균, 장혜진, 박소담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출신이다. 물론 한예종 출신 영화 스테프도 한국영화 발전의 근간이 되었다.  한국영화가 풍성한 요인은 근현대사의 결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5천년 역사가 다 콘텐츠고 영화 이야기가 되었다.

이렇듯 한국영화가 대한민국이 산업화에만 머물렀으면 결코 오늘날의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민주화를 이루어 검열이라는 덫이 사라지고 상상력의 한계를 두지 않으면서 풍성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영화의 깊이와 넓이를 세계 수준으로 이끈 건 동시대의 아픔을 거의 같이 느끼며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관객이다. 이 관객은 좋은 영화에 대한 감동이 준비되어 있다. 한편 정부 역시 촘촘히 우리 영화 진흥을 위한 법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모국어로 만든 한국영화가 외화를 이기는 몇 안 되는 나라에서 이렇게 감동을 할 준비가 된 관객을 둔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행복하다.

 한국영화 100년은 그 어느 나라 영화사보다 눈물겨운 역사다. 봉준호 감독은 한국 최초의 황금종려상으로 알고 있는데 마침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칸영화제가 한국영화에 의미가 큰 선물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